여름. 무기력한 축축함이, 우르죽죽한 날씨들이 좋아요.가장 많이 다치면서도 상처가 쉽게 아물지 못하는 계절이요.딱지도 못 지도록 습하게 곪아버리는 게 어쩌면 꽤나 낭만적인 일일 지도 몰라요.그럼 우린 가을이 되어도 어떤 것이 내게 칼자루를 휘둘렀나 잊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고요.여름에 일어난 일들은 쉽게 잊혀지거나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생경하게 ...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
말하기 싫었던 12 옷장에서 눅눅한 이불을 꺼내며 소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른한 정신은 어디로부터 기인됐길래 누구로부터 얻은 상처이길래 현관 턱을 넘지 못하고 언저리만 맴돌았을까 머리를 박고선 창문을 향해 깊숙이 인사한지 이제 이십 초 이번엔 또 누구의 타작 소리에 선잠을 깨고선 눈물을 흘릴까 다시 고이고이 접었단다 그 어여쁜 마음을 비련한 마음을 이제...
유언 단 돈일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파아란 염원을 껴안고 사랑하는 자녀에게 침대 밑에 숨어있는 발 없는 이의 정체조차 일러주지 못하고 슬프다는 말이 부족해 알지 못할 바엔 차라리 마주치지 않는 편이 낫다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옆집 사람들은 무채색 옷을 입지는 않고 대신 얼마 후 나타난 그의 영혼과 일말의 죄책감 없이 서글픈 춤을 추며 그의...
다 잃어버린 것 같다는 어느 노래 가사를 읊조리며 그럼 누가 사랑을 하나 억울하기만 해서 차라리 악몽에 갇히고 싶다는 고백을 들으면 심장이 아닌 어딘가의 한 표면이 저려온다고 주인이 하나인 네 개의 전자우편 주소들은 언제쯤이면 이 어처구니없는 구속에서 석방될 수 있으려나 손가락을 뜯어먹으며 창살 밖을 구경하고 바닥엔 푸른 혈액만이 흥건해져서 지나가던 어떤 ...
#1 구글포토에 있는 2019년 사진들을 구경하는데 그 안의 내가 참 행복해 보였다. 물론 슬플 땐 카메라를 들 일이 없을 테니까 좋은 사진들만 존재하는 거겠지만, 그래도. 그런데 또 좋아하는 애들이랑 찍은 사진들을 보니 문득 슬퍼지기도 하고… 혼자 온갖 망상을 다 해가면서 좋아했던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긍정적으로 말해...
[영]: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영]: 원래 혼자 좋아하는 걸 뭐 그렇게 당당해 하지는 않잖아 모두가[영]: 근데 내가 남들보다 더 심하게 침체되는 이유는[영]: 내 삶에 내가 없다고 해야 하나[영]: 지금 당장 내 세계를 그려보라고 하면[영]: 진짜 황폐한 사막 같거든[영]: 자신감이 없는 것보다 좀 더 심화된? 나를잃어버렸다.[영]: 내 정체성이고 뭐고 ...
생소한 단어들을 사랑한다. 생소한 단어라는 말조차도 사랑한다. 그것들은 모두 계산적이고, 이성적이고, 일말의 감정도 포함하지 않은 채 굳어가고 있는 황량함이라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무슨 글을 읽더라도 누구의 글을 읽더라도 나는 그 안에서 처음 보는 단어들을 수집하기에 급급했다. 새로운 감정을 부여하는 그것들로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그...
어느 무더운 여름이었나, 우리의 조우는 마치 염소와 늑대의 대면. 공존할 수 없는 둘. 그러나 공존했지. 그 약속은 애증의 불씨였고. 우린 모든 걸 알지. 서로에게 방어해 아니 한쪽은 방어하고 한쪽은 공격해. 그게 염소의 본성이고 그게 늑대의 본질이니까. 본능대로 날뛰던 여름의 꽃들이 모두 목을 꺾이고 그 증거로 온 세상엔 적운이 덮였다. 모두가 죽었지,...
밤 손님 무지하고 파리한 낮의 손님들은 값싼 사랑 이야기에 고고한 척 눈물을 흘렸다 후드리는 손수건엔 구적물이 잔뜩 배어나왔지만 누구도 더럽다며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늦은 밤의 손님들은 자꾸만 어려운 이야기를 요청했다 책장에서 죽고 싶던 날들을 꺼냈고 슬픈 목뼈들은 만족스럽게 움직였다 그래서 자꾸만 죽음을 불러다 놀았다 시뻘건 물이 새어 내리는 줄도 모르...
여름. 무기력한 축축함이, 우르죽죽한 날씨들이 좋아요. 가장 많이 다치면서도 상처가 쉽게 아물지 못하는 계절이요. 딱지도 못 지도록 습하게 곪아버리는 게 어쩌면 꽤나 낭만적인 일일 지도 몰라요. 그럼 우린 가을이 되어도 어떤 것이 내게 칼자루를 휘둘렀나 잊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고요. 여름에 일어난 일들은 쉽게 잊혀지거나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생...
방파제 글쎄 전부 삼켜버렸단다 발목뼈 한 조각도 남겨두지 않고 거짓말 물고기에겐 발목뼈가 없는데 대체 누굴 울리기 위해 그런 허접한 거짓말을 하는 거야 어떻게 된 일인지 단 하루도 화창한 날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꾸며낸 말은 똑같이 나빠 검은색 장화를 뒤집어쓴 괴물이 방파제를 따라 길 때마다 그의 발자국에는 노랗게 이끼 낀 무언가가 진득하게 묻어나고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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